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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충성되이 여겨 주신 직분

  • 조회 : 1987
  • 성경말씀 : 디모데전서 1:12~17
  • 설교자 : 김재홍목사
  • 설교일 : 2017-12-31

심판의 날 들을 칭찬을 위하여

사람들은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 관직에 나가 이름을 떨치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힘을 쓰고 애를 씁니다. 이처럼 세상의 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을 내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을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보듯이, 우리들도 각자의 삶을 잘 살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험을 보아야 합니다. 그 시험이 바로 히브리서 9 27절 말씀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입니다. 그 심판의 날에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네게 많은 것으로 맡기고

내 즐거운 잔치에 참여할지니라.

위와 같은 칭찬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근거로 심판하시는지 그 심판 기준을 알아 마음판에 새기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을 알려주는 세 가지 비유

성경은 마태복음 24장과 25장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이 어떻게 종말을 맞이할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어떠한 심판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고 계십니다. 특히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떠한 기준으로 심판을 하시는지 그 심판의 기준을 알 수 있습니다.

 

1.   열 처녀 비유

신랑을 영접할 준비를 모두 마친 지혜로운 처녀는 신랑이 올 때 신랑과 함께 잔치에 참여했으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는 신랑을 영접하지 못하고 그 잔치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말씀이 바로 열 처녀 비유입니다. 우리는 이 열 처녀 비유에서 주님 오실 날을 대비하여 주님과 동행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으려면 바르게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르게 깨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지식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로 내 안에 들어와 계셔서 그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기초에는 주님을 일하시게 하는 신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함께 부활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일하시게 하는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4:13) 내 속에서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 자신도 힘을 다해서 수고했다는(1:29) 사도 바울의 고백과 권능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62) 다윗의 고백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그 일을 따라서 나도 일했다는(14:10)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출애굽이라는 거룩하신 사명으로 자신을 불렀을 때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그는 일하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라며 못하겠노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시어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리라.”(3:12) 하시며 직접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거부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겠다고 하는 것마저도 가로막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했던 모세의 초기 태도가 그 후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을 사무엘상 8 5절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태도가 우리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한 것이 우리 인간의 강함보다 낫고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우리 인간의 지혜로움보다 낫기(고전1:25)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충성스럽게 여겨 직분을 맡기셨다고(디전1:12) 말하고 있습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뜻을 세우고 기도하기만 하면 됩니다.(1:8) “나는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하시옵소서.”라는 의미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에게 지혜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화까지 모두 주신(왕상3:7~13)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달란트 비유

달란트 비유를 통해 우리는 충성이 심판의 기준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이 맡긴 청지기의 직분을 신실하게 수행한 두 종은 벌어드린 액수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에게 동일한 칭찬의 말을 들었습니다.(25:21, 23) 이것은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충실히 활용하여 청기지의 직분을 얼마나 신실하게 수행했느냐가 중요함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우리의 재능과 잠재력이 충실히 활용될 수 있으므로 이 달란트 비유 역시 주님을 얼마나 일하시게 했느냐 하는 것이 주님께 대한 충성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것도 그를 충성스럽게 여겨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세우신 것이고, 아브라함 역시 충성스럽게 보셨기 때문에 언약을 맺으신 것이며(9:8) 모세 역시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된 사람이기 때문에(12:7) 다윗도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충성됨을 보시고(삼상16:7) 세우셨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충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양과 염소의 비유

하나님께 충성하는 데 어떻게 충성해야 할 것인가를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양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형제들 중 작은 자, 즉 어렵고 고통 받는 이웃을 돌아보고 돌본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반면, 염소는 스스로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자들을 돌보는 행함이 없는 사람들, 즉 자신을 위해서는 부요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너무 인색하고 부요하지 못한 사람들을(12:21)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언제 주님을 돌아보고 돌보았느냐고 묻는 양들에게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찬양을 하고 차량을 운행하는 일 등등이 모두 주님께 해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주님께 충성하는 것, 어려운 일 아닙니다. 여러분들께서 모든 일을 하실 때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고 주님께 하듯 하신 다음(3:23) 주님께 감사만 드리면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모든 일들을 주님께 하듯 정성과 온 마음을 다해 하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며(딤전1:15) 이 땅에 오시어 우리를 위해 고통 당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한 그 주님께 감사만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뭔가 부족하게 주신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단과 지옥과 저주와 고통에서 구원하여 자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자녀 삼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아 주셨고 영원한 부활체를 주셨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의 힘과 방패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6 7, 고린도후서 9 6, 마태복음 6 20절과 11 12, 고린도전서 15 42~44절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 여러분 모두 심판의 날 하나님께 칭찬의 말씀을 듣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전15: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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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성되이 여겨 주신 직분
  • 2018-01-03
  • 김재홍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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